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월31일 전격 석방되었다. 대통령 사면이 언제가는 될 거라 모두 알고 있었으나, 그 시기는 짐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혹자는 이재명 후보 밀어주기 위한 정치적 계산을 한 결과라고도 말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상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라고도 말하고 있다.. 뭐 둘 다 맞는 소리 아닌가!!
태극기부대, 즉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열열히 지지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애국자라고 치켜 세운다. 어떤 특정 개인이나 정치인을 좋아하고 편애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지만,, 박 전대통령이 애국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기에 오늘 몇글자 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애국자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해보자
"애국자: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 이라고 사전에는 나와 있다.내가 생각하는 애국자의 개념은 '자신의 생명이나 건강, 그리고 재산 상의 손해를 감수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애국자라고 치켯 세우는 분들의 의견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일생을 나라 걱정과 나라를 위해 애썻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라를 걱정했는지는 내가 알수 없는 영역이고,, 나라를 위해 애쓰셨다는 워딩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해 보자..
1. 박근혜의 어린시절~청와대 생활
- 박근혜는 1952년 생으로,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면서 1963년에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나이가 13살이다..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들 나이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까지 1979년 약 17년간을 청와대에서 살게 된다. 한 만디로 어린소녀가 신데렐라 처럼 왕궁에서 공주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대통령을 왕에 비유하고 있었기에,,,, 현재의 대통령 이미지와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는 것을 염두해 두자.
2. 1974~1979년
- 육영수 여사 서거 후 박근혜는 영부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감당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으나, 청와대의 얼굴마담 역할정도라고 볼 수 있다.
3. 1980년~1998년
- 박대통령 시해 후 어린동생을 데리고 청와대를 나오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최태민 목사(사실 목사도 아니다)라는 사람과의 질긴 인연이 가속화 되기 시작한 시절이다. 청와대에 있었을 당시에도 최태민과의 친분은 있었으나, 막강한 군부독재시절 젊은 영애를 보호하는 정부기관들에 의해 감시를 받던 최태민은 박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계획적으로 박근혜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박근헤와 최태민의 관계가 어떠한지는 다루지 않겠다. 박근혜가 애국자가 아니라는 관점으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20대후반~30대,,, 한 사람이 가치관이 정립되고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할 시기인데,, 박근혜는 초지일관 최태민을 위해 일을 하게 된다.. 오죽했으면 동생들과 연락을 끊을 정도일까? 도대체 최태민의 어떤 전략에 빠져들었는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은혜를 입은 군장성/정치인들이 박근헤와 그의 동생들을 편히 먹고 살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박근혜는 육영재단 등의 이사장 등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았어야 하는데,, 솔직히 많은 다큐와 서적/보도를 보면 알겠지만.... 그녀는 최태민의 꼭두각시 노릇만 할 뿐이였다.
영남대학교 이사장 시절도 똑같이 최태민의 하수인 역할만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에 과연 그녀는 무엇을 하였는가? 도대체 애국적 행위는 뭐가 있는가? 어린시절은 청와대에서 공주처럼 살았고, 청와대를 나와서는 최태민의 하수인 역할을 해오던 그녀가 왜 애국자인가?
최태민은 1994년 82세에 생을 마감하며,, 그 모든 실권을 최순실에게 넘겨 준듯 하다... 박근혜씨의 동생인 박근령씨 인터뷰 내용을 보면 "언니는 은행에가서 이체하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 이라고 언급했다.. 모든 대소사를 최씨 일가가 도맡아 했고, 그들과 같이 살았다. 어디에도 애국적인 행동은 없다. 1980~2000년까지 최씨 일가의 재산을 눈덩이처럼 불어났음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1998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박근혜의 정치적인 삶이 시작된다. 박근혜를 찍어준 대구 분들은 그녀의 인생이 불쌍해서,, 박정희/육영수의 따님이니까 등등 그의 자질과 능력보다는 동정심과 부모의 후광을 보고 지지를 보냈다.
4. 1999년~2017년
- 그녀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 대구 달성군에서 내리 4연속으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한나라당 대표까지 거침없이 정치적 입지를 굳혀갔다. 냉정한 이미지, 나라만을 걱정하는 이미지,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는 올림머리까지...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전략이 아닌, 최순실 각본/감독에 배우 박근혜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나 알려졌다.... 그녀는 정치일선에 뛰어들어서도 일일이 최순실에게 보고 및 지도를 받으며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여옥 전 의원 인터뷰 내용을 보면 중요한 회의에서 의사결정 순간에 항상 어디론가 사라져 전화하고 와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지근에서 보좌했던 전여옥 전 의원은 박근혜! 그녀에 대한 허구를 알게되었고,, 지지를 철회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그 당시 전여옥씨를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미친사람이라고 까지 욕을 해댔지만, 결국 그녀가 옳았음은 나중에야 비로소 알려졌다.
-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도,, 최순실 일가를 돕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모습은 정말 씁씁하기까지 하다. 탄핵되고 나서 최순실과 박근혜의 녹음 파일 들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누가 대통령인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것을 알것이다.
- 그렇다면 박근혜가 최순실의 아바타라고 치자.. 최순실이 정말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박근혜를 이용했다면 국정농단이라 해도 정상참작이 되었을 것이고, 탄핵까지 갔겠는가? 최순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사익을 위해 박근혜를 움직였고, 박근혜 퇴임후에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철저히 계획을 세운 장본인이다..
5.끝맺음
- 위에서 간략히 박근혜 전대통령의 인생에 대해 간추려보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도대체 그녀가 어떤 애국적인 행동을 했는지 자문해 보라..
필자는 갠적으로 박근혜씨가 치료를 잘 받고 동생들과 화해한 후에 여생을 행복하게 마무리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근혜 개인사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비극적이지 않는가?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믿었던 최씨 일가에게 이용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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